
10월 30일(금) 하인삶
창세기 38:1~11
유다와 다말(1)
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4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5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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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11절.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어쩌면 가장 똑똑하고, 흠없다 할 수 있는 아들 유다..레아에게 낳은 아들 중 첫째 아들 르우벤은 아버지를 넘보는 근친상간으로, 둘째와 셋째인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에서의 살륙으로, 아버지 야곱의 신뢰가 무너진 아들들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허물이나 과오가 크게 없었던 유다는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형제들을 쉽게 여겼고, 요셉만을 편애하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형제들 안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동생 요셉을 팔아 넘기는 일을 주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저지른 것에 회개는 커녕 같은 아버지의 아들들임에도 요셉만 귀히 여기며, 자신들의 위로를 받지 않는 아버지를 야속해하는 듯, 유다는 아버지와 형제들을 등진 채 가족공동체를 이탈합니다. 그리고 마치 보란듯이 믿음의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일 즉 이방여인인 가나안 여인을 취하여 삼형제를 낳고, 자신의 큰아들의 아내도 자신이 정하여 이방여인과 결혼시키는 등 하나님 없는 이방인처럼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자고한 유다의 마음에도 방자한 아들들의 연속적인 죽음에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막내 아들마저도 자기 형들처럼 죽을까 하는 염려에 전전긍긍합니다.
유다는 막내 아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보며,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었을까요? 만약에 그랬다면, 이쯤에서 돌이켜 마음을 고쳐 아버지께로 돌아갔겠지요..참 우리 인간은 완악합니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나도 죄인인 것’을 깨닫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 주님~~’나만 의롭다’ 생각하는 교만한 마음을 깨뜨려 주시고, 주님 없이는 ‘나도 죄인인 것’을 늘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아멘!
1절..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그 후에..는…형제들과 요셉을 팔고 아버지 야곱은 위로를 받지않고…이일이 있은 후로 유다는 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죄책감이든..가족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든..가족을
떠나 버렸습니다..회개를 한것도 하나님께 간구도
아닌..그냥 벗어나 버렸네요..
그렇게 하나님 없는 삶은 또 시작됩니다
끔찍하고 절망으로 가득찬 일들이 벌어집니다..
가족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싫든 좋든 떠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
적어도 그곳은 아버지의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이었으니까요..
하나님아버지 무슨일이 있어도 아버지의 성전에 거할수 있도록 저에게 은혜를 주시옵소서!
10월의 저녁기도회 멋지게 아버지께 올려드릴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해주세요
아멘~~♡
아멘!
10월의 저녁기도회를 통한 은혜가 풍성하지요.
믿음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는 가을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맞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공동체를 떠나서는 안되는 것이었어요.
공동체 안에 머물러 있었어야 그 고통이 치유되었겠지요.
이 놀라운 길을 발견한 님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하길 축복합니다^^
창세기 38:1~2
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회개하는 삶, 회개하는 믿음>
1.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유다가 가족을 떠났습니다. 그 안에 더 이상 있고 싶은 마음도, 있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동생 요셉을 팔아버리고, 아버지를 속인 일은 두고두고 마음 속에 고통으로 남았겠지요. 분노의 감정으로 행한 일은 결코 그 영혼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흔적으로 남아 삶의 발목을 잡고 전진하지 못하게 합니다. 아마도 유다는 동생의 일과 아버지를 속인 일이 너무나 힘들었을 것입니다.
2. 가나안 사람 수아
아버지에 대한 분노, 가족에 대한 환멸, 죄책감으로 채워진 유다의 마음은 너무나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 상황을 피해보려 하지만 잘못했던 선택은 또 다른 잘못된 선택을 낳을 뿐입니다. 집을 뛰쳐나간 유다는 가나안 여자를 만나 동침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정상적인 결혼을 뜻하는 아내라는 말도 없습니다. 한 번 잘못 들어선 삶의 패턴은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반복됩니다.
3. 회개하는 삶, 회개하는 믿음
유다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가정에 악재가 계속해서 터집니다. 장자 엘과 차자 오난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유다는 손을 들어버렸습니다. 셋째를 지키기 위해 며느리 다말을 고향으로 돌려보냅니다. 지나간 일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너무나 아쉽습니다. 유다가 행한 일을 하나님께 회개하고 아버지께 용서를 구했다면 이와 같은 고통이 남았을까요? 적어도 잘못된 선택의 패턴을 보이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회개가 생명을 살립니다. 회개가 가족을 살립니다. 회개가 공동체를 살립니다. 회개하는 삶이길 원합니다. 회개하는 믿음이길 원합니다. 잘못된 패턴을 반복하지 않길 원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유다는 요셉을 은 이십에 팔아넘기자고 한 당사자였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자신의 뜻대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자식을 위해 또 자신을 위해 며느리를 데려다가 종족을 번영하게 하려는… 그런 행동들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 끊임없이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각자의 인생이 주어지고 그 삶에서 모든 순간을 자신이 선택하고 살아갑니다. 유다는 자신의 삶을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식의 인생까지도 개입하여 뒤 흔드는 모습에서 전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다… 어떤 부문을 악하다고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왜 유다를 죽이지 않고 엘과 오난을 죽이셨을까… 그리고 아들이 죽고나서도 유다는 슬퍼하거나 회개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자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둘째 오난에게 본분을 지켜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둘째가 죽자, 이번에는 며느리에게 수절하고 셋째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므로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여 뒤흔드는 행동,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감추기 위해서 “남을 위하여”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생각, 하나님을 모르기에 아니면 경외하지 않아서 그것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분별조차 할 수 없는 상태. 이런 것들인지.. 어렵습니다. 그리고 선한 것을 보기 위한 눈과 마음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며 저 또한 그렇게 살기 원한다고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장자 엘의 악함의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엘은 악한 자라는 기록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역대상 2:3에도 동일하게 유다의 장자 엘은 악하여 하나님께서 죽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차자 오난은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불문법을 어겼습니다. 형의 아내에게 들어가 형을 위하여 아이를 낳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난은 이것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것도 악했습니다. 오난도 그의 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죽이셨다는 표현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엘과 오난은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죽이셨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엘과 오난은 악했다는 것입니다.
악함의 기준은 사람이 아닙니다. 악함의 기준은 하나님입니다.
악함의 기준을 사람에게서 찾을 때 우리에게서도 악함이 나타날 것입니다. 악함의 기준을 하나님에게서 찾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의 삶의 기준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