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21일(수) 하인삶
창세기 35:16~22
라헬이 산고로 죽다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This Post Has 1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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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름을 다르게 불렀을까. 하고 보니
슬픔의 아들. 오른손의 아들.
그런 뜻이었군요.
그 뜻을 보고 저는 라헬이 자신의 삶을 비관했다고
느껴지지 않고 엄마 없이 자랄 아들을 불쌍히
여겼다고 생각했어요.
라헬이 자신의 삶을 비관했던 것이군요.
흠..
야곱이 왜 오른손의 아들이라고 고쳐 불렀을까요.
라헬을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라헬이 남기고 간 마지막 아들이라 그런 걸까..?
어렵습니다~~
죽기 직전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부른
라헬의 모습이.
저는 왠지…. 짠하네요.
오늘은 왠지.
삶의 모습들을 떠올려보며.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18절. 라헬이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슬픔의 아들)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이라 불렀더라.
같은 사물 혹은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그 해석이 다른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어렵게 요셉(=아들을 더하다)을 나은 후, 하나님이 원하는대로 아들을 더하여 주셨것만, 죽어가는 자신의 슬픈 감정을 그대로 갓난아기의 이름에 전가시키는 라헬…마치 ‘너때문에 내가 죽어가는 것은 너무 슬퍼’라고 항변하는 라헬은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을 가지고, 사랑하는 이가 떠나는 슬픈 상황에서도 그녀가 나은 아이의 이름을 ‘믿음의 눈’ 으로 고백합니다. 베냐민..하나님이 주신 나의 오른손 곧 나의 힘, 나의 자랑이라고~~
” 주님~~알 수 없이 생겨나는 나의 감정도 주께 맡깁니다~슬플때나 화날때나 두려울 때나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도 거기에 빠지지 않고, 주님 주시는 믿음으로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야곱에게그토록사랑받던라헬…
언니인레아를질투했고..
아버지의드라빔을훔쳐끝까지숨기는
욕심..누구에게서찾든지그는살지못할것이요..(창31장32절)
결국엔난산으로죽고만다..
힘겹고도슬픈끝이다..
누구나자기죄에대한댓가는치뤄야한다
그리스도인이라해서…어쩌면죄에대해더방종하고
있진않은지.. 회개하면된다는생각에…
아버지하나님…끊임없는욕심..버리고싶습니다
허영심과시기심으로가득차서제끝을슬프게
맞고싶진않습니다
아버지힘을주세요!
이겨낼힘을!내자신과싸워이겨낼힘을!
고난을인정하고인내할수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능히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37.
아멘~♡
<죽게 되어 혼이 떠나려 할 때>
야곱의 인생은 왜 이럴까?. 정말 자신은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고 지치는 고통의 나날의 연속이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직접 겪지 않고서는 느끼지 못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그것도 모자라 장자인 르우벤은 끔찍한 악행을 저지릅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자기 뜻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대단한 성품의 사람입니다. 외동딸이 강간을 당하고 그 사건으로 자식들은 살인마가 되고 장자는 근친상간, 형 에서와의 관계, 외삼촌집에서 20년간의 노동… 아마도 저라면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포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살아서 뭐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 차라리 죽는 게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일꺼야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악을 악으로 대항하지 않고 인내하며 또 인내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정말 작은 일, 사소한 것들에 쉽게 반응하고 분내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이루려는 모습에… 부끄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죽게 되어 혼이 떠난다는 말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죽으면 육체는 썩어 없어지지만 그 영혼은 살아있습니다. 이 땅에서 육체적으로 살아갈 때 절대 죄 짓지 않고 야곱과 같이 모든 일을 대면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인내하고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래서 언제가 될지 모를 혼이 떠나려 할 때 구원의 확신이 있는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악을 악으로 대항하지 않고
인내하며 또 인내하는
이 모습이 보였다면 또한 이 모습까지 성장할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와 권능으로 축복합니다.
창세기 35: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베노니 VS 베냐민>
1. 라헬의 베노니
자신의 둘째 아들을 낳던 중 라헬이 죽습니다. 참으로 한 남자의 큰 사랑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의 결실이 없어서 고통을 겪기도 했었습니다. 아이를 낳다가 죽으며 한 마디를 남깁니다. 베노니. 슬픔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마치 자신의 삶을 한탄하는 듯한 이 한 마디에 가슴이 저며 옵니다.
2. 이스라엘의 베냐민
한 아들을 두고 부르는 이름이 다릅니다. 죽어가는 여자는 베노니라 부르고, 살아있는 남자는 베냐민이라 부릅니다. 베노니는 슬픔의 아들, 베냐민은 오른 손의 아들입니다. 한 사람은 한탄과 낙심을, 한 사람은 소망과 능력을 보았습니다.
3. 베노니 VS 베냐민
슬픔과 오른 손. 같은 일에 한 사람은 슬픔을, 한 사람은 오른 손을 보았습니다. 그것의 차이입니다. 이름이 바뀌면 보는 눈도 바뀝니다. 발꿈치를 붙잡는 자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바뀌었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희망이 되었고, 낙심이 변하여 소망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받습니다. 새 이름을 받아라. 새 삶을 살아라.
아멘
아멘!
아멘~♡
17절: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9절: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4명의 아내중 야곱이 일편단심 사랑했던 라헬을
통해 13번째 아들 베냐민을 얻습니다!
그러나 득남의 기쁨도 잠시뿐, 난산 끝에 …
라헬은 죽게 되고 베냐민의 생일은 곧 라헬의
기일이 됩니다…
오늘 큐티는 상당히 어렵게 다가 오네요~^^
그치만 라헬의 죽음과 베냐민의 탄생을 통해 …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한분~~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오늘은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며 말씀을 나눕니다!
하인삶 가족들의 기도 덕분에 어머니 수술 깨끗이
잘 되셨고 혹의 정체도 나쁜게 아니라고 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 할렐루야! ”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주님께서 사랑하는 엄마의
남은 생애 …새롭게 만들어 주신 건강으로
평안과 기쁨의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를
심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함께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생명의 주관자, 그분께 우리의 생명을 맡기는 바로 그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그 믿음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