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傷處)가 모이니 풍경이 됩니다
교회 문을 열면 정면에 자작나무 십자가가 보입니다.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 해서 자작나무라고 불렀다고 하죠.
가끔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하얀 빛깔을 지닌 것이 인상적입니다. 거기에 몸은 일직선입니다. 참 단아하다고 느껴질 때, 그 생각을 무색하게 하는 검은 흔적들이 눈에 띕니다. 자작나무 몸에 남겨진 상처의 흔적입니다.
세로로 세워진 몸에 대략 예닐곱 개 정도의 상처가 있고, 가로로 뉘어진 몸에 대여섯 개 정도의 상처가 있습니다. 이 상처가 십자가를 묵상하게 합니다.
소리 없이 새겨진 짙은 빛 상처는 침묵으로 많은 말을 전해 줍니다. 당신의 마음 속 짙은 그늘을 나도 안다는 듯이 도리어 자신을 바라다보고 있는 이를 위로하는 것 같습니다.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에 자작나무 숲이 있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는 풍경은 비현실적입니다. 하얀 몸들이 푸른 잎사귀들의 옷을 입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있습니다. 하얀 빛과 녹색 빛이 직선으로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사진 속의 풍경은 참으로 안정적입니다. 사진의 구도 때문일까? 한참을 바라봐도 그것이 안정적인 이유의 전부는 아닌 듯싶습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짙은 빛의 상처입니다.
나무마다 군데군데 짙게 그어진 흔적들이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습니다. 아픈 상처의 흔적들이 중심을 잡아주니 풍경은 더욱 아름답게 되었습니다.
상처가 없으면 좋았겠으나 상처가 있으니 그다웠습니다. 상처가 함께 모이니 하얀 빛의 몸이 더욱 하얗고, 짙은 빛의 흔적은 진한 침묵으로 세상을 다독이고 있었습니다.
그 따뜻한 숲에 당신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김종균